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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것저것

헤이안 시대의 목욕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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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은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혈액 순환이 개선되어 건강에 아주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목욕"라고 말하면 욕조에 담근다는 온천목욕이 알반적이지만, 헤이안 시대에서는 방식이 현대와 조금 다릅니다.

특히 귀족은 원래 목욕 자체를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담없이 집 욕실을 사용할 수 있어, 손쉽게 목욕을 즐길수 있지만 그 당시 헤이안 시대에는 어땠을까요? 

"헤이안의 수도는 비위생 적이었나?"

헤이안의 수도는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가 깔린 건물도 일정했던 명확한 기준에 의해 세워진 계획도시 입니다. 

매우 면밀한 계산 하에서 도시 계획이 이루어져 헤이안 시대의 기술과 문화의 정수를 모아 만들어진 것은 믿어 의심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생에 관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으며 특히 화장실에 관해서는 상당히 허술한 것이 많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미 헤이안 시대 이전 부터 원시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이안의 수도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골목은 서민의 배설물이 모여 버리거나 화려한 이미지의 귀족조차 휴대용 화장실에서 노상방뇨를 하고는 했습니다. 헤이안시대는 위생 환경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다지 좋은 시대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민들의 목욕 사정"

그런 비위생적 인 도시에 사는 당시 서민들의 목욕 사정을 드려다 보자면, 헤이안 시대에는 대량의 물을 끌어다 따듯하게 덥히는 것도 상당한 고생 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증기욕 같은 것이 주류가 되었습니다. 

현대에서 말하는 사우나이지만,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중기에 이르러 목욕은 마을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의

위생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증기욕에 의해 땀을 흘려 떠오른 '아카'를 나뭇잎 등을 사용하여 활용하였으며, 물을 뿌려서 몸을 씻는 방법도 일부 서민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귀족의 저택에서 행해지던 증기 목욕은 물을 끓여 전용 밀실에 수증기를 넣고 증기가 가득에서 목욕을 했다고합니다. 목욕 중에는 엉덩이 아래에 하얀천을 깔고 앉았고 이 천이 '보자기'의 어원으로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귀족들의 목욕 사정"

지금은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인입니다만, 헤이안 시대의 귀족은 욕조에 몸을 담구는 습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귀족의 몸 주위는 항상 '비위생적'이었다고 생각되며, 특히 여성은 당시에 항상 많은 옷을 껴입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때가 투성이이며 백색 분말인 플라크를 옷에 부착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플라크를 통한 방향 문화가 뿌리 내리고

있던 배경에는 이러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오는 몸 체취를 가릴 목적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럼 왜 당시의 귀족들은 목욕을 싫어하였을까요? 그것은 당시의 운세 의해 길조를 결정하는 풍습이 있었고, 목욕을 하고 때를 미는 것이 모공속에 악의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귀족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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